부산에 계신 엄마의 전화는 그냥은
없었다.
무소식이 희소식인양 지내는 엄마와 나는 늘
그렇고 그런 해결할 문제를 담은 통화만이 오고 갔을 뿐이었다. 어느 날부터인가
엄마는 혼자 하는 것들에 대해 힘들어하고 있었다.
소소한 쇼핑서부터 병원에 다니는 일까지.
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엄마의 마음속엔
늘 갖고자하는 것들이 자라나고 있었다.
나 중학교 때였던가? 엄마는 하나 둘 자개로
된 가구들을 들이기 시작했다. 장롱, 문갑, 화장대 등등 남는 벽이
없을 때까지 자개로 된 그것들로 꾸역꾸역 방을 채워나갔다. 난 자개로 된 모든
것들이 싫었다. 끝이 보이질 않는
엄마의 물욕을 대변하는 물건인 것 같아서.
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. 엄마를 엄마와
딸이라는 관계로 만나지 않았다면 보고 살지 않았으리라. 나이에서 오는 연륜도
푸근함도 소녀감성의 엄마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버거운 것이었다. 예술의 어느 한
분야에 묻혀서 살았어야했다. 엄마는...
생선전에 각 잡고 쑥갓과 고추로 그림
그리느라 하루 종일 전을 붙여도 한 접시, 김치를 담아도 다섯
포기 이상은 상상도 못하셨고 딸 셋의 손에 잣, 실고추, 깨를 각각 들려놓고
포기마다 그 위에 그림을 그리셨다. 집안 식구가 아니고는
같이 밥 먹는 자리조차 항상, 한 번의 예외 없이
불편해하셨다.
난 늘 엄마를 원했다. 수줍은
여자, 감수성이 예민한 여자가
아닌 엄마를.
그랬던 거다. 기억을 하기 시작한
아주 오래 전부터 난 늘 엄마를 원했지만 엄마는 가끔, 불현 듯 엄마임을
내비치곤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, 한 사람의 여자로
돌아가곤 했다.
작년 여름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책 「엄마를 부탁해」
그 책 속에서 나는 내가 그간 엄마 앞에
쌓아올린 차가운 담벼락을 보았고, 거기엔 언제
열었는지조차 기억할 수 없는 빗장이 채워진 문을 보았다.
싸늘한 나를 만났고 한 사람의 여자를
만났다.
엄마이기 이전에 한
사람, 천상 여자.
엄마!
엄마이기를 거부했던 한 여자의 모습!
인생은 시간이 가지는 절대적인 삶의 무게를
겪지 않으면 그 본연의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나보다.
거울 앞에 선 내게서 그 때 마흔 넘어선
엄마의 모습을 본다.
18살 딸에게서 그 때
엄마를 바라보던 냉소적인 시선의 나를 본다.
끊임없는 존재의 순환을 마주하는
순간이다.
그렇게 시작된 거다.
엄마의 이야기를 하기로
했다. 아니 내 얘기를
하기로 한 건지도 모른다.
엄마의 방을 가득 채웠던 자개장을
떠올린다. 엄마의 투박하게 깎아
붙인 자개장. 엄마는 더 섬세하고 더
아름다운 자개장을 가지고 싶었을 거야. 누가 봐도 그
아름다움에 반할 그런 자개장을 들이고 싶었을 거야.
많은 분들이 자개장이 만들어진 작품에 마음을
주신다. 내가 엄마를 바라보며
풀어낸 감정을 읽으신 걸까? 아님 정성스럽게
만들어진 자개장의 섬세함이 본인의 과거 아름다운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 걸까?
10년 전 쯤, 몇몇 여성 작가들이 어머니를 그리고 만드는 모습을 마주한 적이 있다.
그 땐 몰랐지. 내가 엄마를 이야기하게 될 줄은.
그 자리에 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대한
노래.
엄마의 방.
2012년
작업노트